안녕하세요! 제가 요즘 밀사, 연희, 지승호가 쓴 <성노동자, 권리를 외치다>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책 중 일부분을 여기다 조금씩 옮겨볼게요 :)
오늘날 우리 사회는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착취하면서 돌아갑니다. 자신의 삶을 감당하기에도 급급한 사람들에게 무작정 ‘저항하고 싸우라’고 주장하는 것은 허울 좋은 이상론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야말로 비윤리적이죠. 착취당하는 성은 사라져야 한다, 인간을 수단화해선 안 된다,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성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당위가 무슨 소용일까요? 모순된 체제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개인의 나약함을 직시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사상일지언정 현실 앞에선 한없이 무용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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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자는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비루하고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 건 불성실함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성노동이라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일지도 모르겠어요. 끊임없이 여성을 착취해온 남성들의 죄책감이 그 이면에 서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존재하지만 드러내지 말 것! 성노동을 향한 전형적인 이중성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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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를 말하면서 현실을 외면하는 것, 불편하다고 해서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기만입니다. 진보는 자신이 얼마나 양심적인지를 호소하는 인정투쟁에만 머물러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문제는 그런 식의 자기만족이 과연 진보적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의 여부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 그로써 어떤 것을 누리고 있는지에 대해 성찰한 뒤 이를 책임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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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많은 분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성노동을 어쩔 수 없이 택합니다. 성노동은 여성 빈곤의 문제와도 닿아 있어요. 절대다수의 성노동자들에게 성노동은 생계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성노동자임을 알리라는 요구는 너무 가혹해요. 성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일 때 사람들이 말합니다. “왜 얼굴을 가리냐. 그렇게 당당하면 얼굴을 보이고 해라!” 하고 말이죠. 왜 이런 식의 비난을 하는 걸까요? 성노동자의 상황을 몰라서일 수도 있고, 알면서도 일부러 그러는 것일 수도 있지만 두 가지 다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의 현실을 이해해야죠. 그래서 저는 성노동운동이 당사자성을 담보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성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당사자성이 부족하다고 해서 성노동운동이 무의미한 것도 아니고요. 언젠가는 그분들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아직까지는 그럴 여력이 되지 않는 것뿐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사회적 모순을 당사자들더러 알아서 해결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함께할 일은 함께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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