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가 요즘 밀사, 연희, 지승호가 쓴 <성노동자, 권리를 외치다>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책 중 일부분을 여기다 조금씩 옮겨볼게요 :)


오늘날 우리 사회는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착취하면서 돌아갑니다. 자신의 삶을 감당하기에도 급급한 사람들에게 무작정 저항하고 싸우라고 주장하는 것은 허울 좋은 이상론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야말로 비윤리적이죠. 착취당하는 성은 사라져야 한다, 인간을 수단화해선 안 된다,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성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당위가 무슨 소용일까요? 모순된 체제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개인의 나약함을 직시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사상일지언정 현실 앞에선 한없이 무용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을 바꾸자는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비루하고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 건 불성실함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성노동이라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일지도 모르겠어요. 끊임없이 여성을 착취해온 남성들의 죄책감이 그 이면에 서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존재하지만 드러내지 말 것! 성노동을 향한 전형적인 이중성이지요.

18~19


당위를 말하면서 현실을 외면하는 것, 불편하다고 해서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기만입니다. 진보는 자신이 얼마나 양심적인지를 호소하는 인정투쟁에만 머물러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문제는 그런 식의 자기만족이 과연 진보적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의 여부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 그로써 어떤 것을 누리고 있는지에 대해 성찰한 뒤 이를 책임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19


실제로 많은 분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성노동을 어쩔 수 없이 택합니다. 성노동은 여성 빈곤의 문제와도 닿아 있어요. 절대다수의 성노동자들에게 성노동은 생계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성노동자임을 알리라는 요구는 너무 가혹해요. 성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일 때 사람들이 말합니다. “왜 얼굴을 가리냐. 그렇게 당당하면 얼굴을 보이고 해라!” 하고 말이죠. 왜 이런 식의 비난을 하는 걸까요? 성노동자의 상황을 몰라서일 수도 있고, 알면서도 일부러 그러는 것일 수도 있지만 두 가지 다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의 현실을 이해해야죠. 그래서 저는 성노동운동이 당사자성을 담보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성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당사자성이 부족하다고 해서 성노동운동이 무의미한 것도 아니고요. 언젠가는 그분들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아직까지는 그럴 여력이 되지 않는 것뿐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사회적 모순을 당사자들더러 알아서 해결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함께할 일은 함께 해야죠.

22~23

오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진·파일

TIP 최대 크기 25M 파일을 20개까지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는 드래그해서 순서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