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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상한 모임 셋. 1편 - 다른 회사의 점심시간 책모임에 가다 ‘부크부크’>
어떤 사람은 저를 이렇게 부릅니다. “모임 덕후”. 하도 다양한 모임에 참여한다고 얘기해서 그런가봐요. 하지만 집에 있는 걸 제일 좋아하고, 이동할 때 동선을 중시하는 저는 사실 오프라인 모임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별로 가기 싫은데 가야 하는 모임을 정말 싫어하고 (누가 좋아할까 싶지만), 어쩐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하나라도 있으면 모임에 쉽게 발을 들이지 않습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모임 편식쟁이’에 가깝습니다.
이런 제가 올해의 모임 세 개를 꼽아볼까 해요. 어떤 기준이랄 건 없고, 이 주제를 떠올렸을 때 들었던 모임들이 있습니다. 모임 편식쟁이가 올해 즐겨찾은 모임 셋.
오늘은 첫 번째 글로, <다른 회사의 점심시간 책모임에 가다 ‘부크부크’> 편입니다.
(원래 한번에 3개를 다 쓰려고 했으나 첫 모임에 대한 글이 길어져서 나눠서 써보려고 합니다.)
저는 주로 집에서 일하는 원격노동자인데요. 그러다보니, 낮에 가끔 누군가와 수다를 떨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동료나 친구와 함께 했던 점심시간이 그리울 때도 있구요.(일일연속극처럼 점심시간마다 이어지는 이야기 같은 게 있죠) 물론 동료들과 전화나 화상회의는 자주 하지만, 아무래도 밥이나 간식을 나눠먹진 못하니까요.
그러던 어느날. 지인 하나가 사내 점심시간 독서모임이 있는데, 거기서 페미니즘 책을 읽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마침 페미니즘 책을 같이 읽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저는 ’재밌겠다, 부럽다’라고 했는데, 그 사람이 “씽도 같이 할래요? 멤버들한테 한번 물어볼까요?” 라고 제안을 해준 겁니다. 그래서 어찌어찌 하다보니, 올해 4월부터 저는 그 모임의 (준)고정멤버가 되었습니다. 처음엔 페미니즘 책을 같이 읽고 싶고, 점심시간에 나들이를 하고 싶어서 가게 된 이 모임이 어느덧 제게 꽤나 소중한 모임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 모임은 저를 제외하면, 서로의 거리가 매우 가까운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한 공간에서 같이 일하고, 밥먹고, 같은 책까지 읽는 사람들이니 꽤 친밀한 사이라고 볼 수 있죠. 50~100명 정도 되는 조직에서 7~8명 정도가 뜻을 모아 만든 모임이니까 취향과 생각도 잘 맞는 사이일 겁니다. 이렇게 보면, 저는 ‘이미 친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든 거죠. 그런데 이상하게 저는 이 모임에 가는 게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고, 매우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상한 일이죠.
왜 나는 이 모임을 편안하게 느낄까, 곰곰 생각해보았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 중입니다) 아,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어요. 나는 이 모임의 ‘깍두기’라서 편안하게 느끼는 건 아닐까? 모임에 참여한지 거의 8개월 쯤 되었지만, 여전히 저는 이 모임의 ‘단체 카톡방’에 들어가 있지 않고, 지인을 통해 공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지인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점심식사 장소도 고르지 않고 있네요. 물론 최근엔 책 선정에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저는 이 모임이 그 조직에서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진 건지 잘 모르고 참여만 하고 있습니다.
‘모임 운영은 하지 않고, 몸만 가는 거! 그거 무임승차 아니냐!’ 라고 하시면, 네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제가 하지 않은 건 모임의 ‘실무’보다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인 것 같습니다. 모임, 커뮤니티를 만든다면 해야 하는 것들 있지요. 잘 맞는 사람을 모으고, 공통의 화제를 찾고, 주파수도 맞추고, 감수성도 맞아야 하고, 하다 못해 누군가가 싫어하는 음식이 뭔지도 알아야 하지요. ‘부크부크’는 이런 것들이 아주 잘 정리된 모임이었고, 이미 너무 편안한 분위기의 모임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어느 동네에 이사를 갔는데, 그 동네 사람들이 이미 너무 아름다운 마을을 형성한 상태인 거죠. 마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우연히 갔는데, ‘와 너무 좋다’라는 느낌이 든 겁니다. 부크부크는 저에게 그런 느낌을 주었어요.
그래도 제가 이 모임에 기여하는 게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저는 이 모임에서 ‘메기 선생님’으로 불립니다. “수조에 미꾸라지의 천적인 메기를 집어넣으면 미꾸라지가 더 활발하고 건강해진다”라는 (무서운) 이야기가 있지요. 외부에서 온 고정 게스트인 저의 존재 때문에 본인들이 더 열심히 책을 읽고,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렇다고 제가 ‘선생질’을 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어찌보면 어색하고 소외될 수 있는 저에게 이런 막중한 임무를 주고, “메기쌤이 꼭 와야 한다”고 하시는 분들… 참 신기한 분들입니다. (이제 10~15시간 정도 본 사이면서…)
오늘은 <체공녀 강주룡>이라는 책을 읽고 모입니다.(이 책 정말 강추입니다!!! 겨울에 시간 나실 때 꼭 읽어보세요) 모임 장소는 회사 앞 카페, 점심 메뉴는 샌드위치라고 해요. 내년에도 이 모임은 꼭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쭉 쓰고 다듬지 않은 글이라 오타와 비문이 많습니다!)